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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마이 옥토퍼스 티처 (2020) 리뷰 : 바다 속 한 문어가 가르쳐준 것들

by globalizing 2025. 5. 16.

우리는 누구에게서 삶을 배울 수 있을까. 스승은 늘 사람이어야 할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마이 옥토퍼스 티처》는 남아프리카 바다의 찬 물속에서 만난 작은 문어 한 마리와 다이버의 관계를 따라가며, 아주 낯선 방식으로 이 질문에 답한다.

 

카메라는 자극적인 장면이나 위대한 업적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문어와의 교감을 통해 다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한 인간의 감정 여정을 아주 섬세하게 비춘다. 그 조용한 화면 속에서 우리는 자연의 움직임이 얼마나 지혜롭고 깊이 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이 글에서는 영화의 핵심 내용과 감상, 이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를 차분히 정리해본다.

 

1. 줄거리: 바다 아래, 교감이 시작되다

감독 크레이그 포스터는 삶의 번아웃 상태에서 바다로 향한다. 남아프리카 해안의 해조 숲 속을 매일같이 잠수하던 그는 어느 날 문어 한 마리를 발견하게 된다. 처음에는 경계하지만, 점차 그는 이 문어의 일상과 환경, 움직임을 따라가기 시작한다.

 

이후 약 1년간 그는 날마다 바다로 나아가 문어를 관찰하고, 조심스럽게 신뢰를 쌓는다. 문어는 장난치기도 하고, 공격도 받으며, 사냥을 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크레이그는 스스로의 감정과 존재를 되돌아보게 된다. 영화는 내레이션과 함께 기록된 실제 영상들을 통해 이 둘의 '교감'을 보여준다. 그리고 어느 날, 그 교감의 끝이 찾아온다.

 

2. 나의 감상평: 교감이란 말이 과하지 않다고 느낀 순간

처음엔 솔직히 의심스러웠다. '문어와의 교감'이라는 표현이 다소 낭만화된 과장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문어의 섬세한 반응과 크레이그의 조심스러운 접근을 보며, 이건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문어가 자신을 감추기 위해 주변 환경에 맞춰 피부색과 형태를 순식간에 바꾸는 장면이었다. 그 놀라운 위장 능력은 생존을 위한 도구지만, 어쩌면 우리 인간이 감정을 감추기 위해 쓰는 방식과도 닮아 있었다.

 

크레이그는 문어를 통해 자연의 질서를 보고, 동시에 자신이 놓쳐온 삶의 균형을 돌아본다. 영화가 끝날 즈음엔, 이 이야기는 문어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와 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조용히 관찰하고, 기다리고, 마음을 나누는 그 과정이 참 묵직하게 남는다.

 

3. 이 작품이 묻는 질문: 연결은 언제 진짜가 되는가?

《마이 옥토퍼스 티처》는 '교감'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지 질문한다. 말을 나누지 않아도, 서로의 경계를 인지하고 존중하는 관계는 진짜 연결일까? 아니면 같은 종이 아니라면, 우리는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일까?

 

이 작품은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자연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카메라는 자연을 대상화하지 않고, 동등한 존재로 존중한다. 그래서 더 깊은 울림이 있다. 우리가 무언가를 소유하지 않고도 감동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4. 기억에 남는 장면: 위협을 피하기 위해 문어가 돌 위로 올라서던 순간

사냥하러 온 상어에게 쫓기던 문어는 숨을 곳을 찾다 돌 위로 올라선다. 그리고 무언가를 던지듯 주변 껍질과 돌을 휘날린다. 크레이그는 그 순간을 보며 "문어가 도구를 사용하는 걸 처음 봤다"고 말한다.

 

그 장면은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창의성이었다. 그건 마치 우리가 벼랑 끝에 몰렸을 때 마지막 수단으로 꺼내는 용기와도 같아 보였다. 감탄을 넘어서 마음이 울컥했던 순간이었다.

 

5. 정리하며: 말없이 배우는 관계의 가능성

《마이 옥토퍼스 티처》는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남는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 말 없이도 서로를 바라보는 것, 그 안에서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들. 그런 감정들은 때로 긴 대사보다 더 많은 걸 말해준다.

 

이 다큐는 문어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관계는 누구든, 어떤 방식으로든, 가능하다는 희망을 남긴다. 바다 속 한 문어의 가르침을 배우고 싶다면 마이 옥토퍼스 티처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