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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앤아더(2022, Anne+ the Film) 리뷰 : 나라는 문장을 완성하는 방법

by globalizing 2025. 5. 16.

 

앤아더는 화려하지 않다. 사건도 크지 않고, 인물도 많지 않다. 그러나 그 조용함 속에서 우리는 깊은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 작품은 관계의 갈피에서 흔들리는 한 청년이 자신의 감정, 정체성, 미래를 마주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묻는 여정 속에서, 무너지고 또 다시 일어서는 앤 아더를 만날수 있는 드라마를 소개한다.

 

1. 줄거리: 떠날 준비를 하며 멈춰버린 마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주인공 앤은 캐나다로 이주를 앞두고 있다. 연인과 함께 떠날 계획이었지만, 관계는 이미 흔들리고 있고, 앤 자신도 작가로서의 삶에 대한 확신을 잃고 있다. 주변 사람들은 자신의 길을 찾아가지만, 앤은 점점 더 제자리걸음을 반복한다.

그렇게 떠나기 전 며칠 동안, 앤은 과거의 연인들, 친구들,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깨닫는다. 영화는 시간을 멈춘 듯한 며칠의 기록을 통해, 한 사람의 감정이 어떻게 이동하는지를 따라간다.

 

2. 나의 감상평: 멀리 떠나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더 가까워졌다

앤이 자꾸만 혼잣말처럼 일기를 쓰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글로 쓰는 앤의 감정은 소리보다 더 조용하고, 그래서 더 진심처럼 느껴졌다. “나는 왜 항상 상대에게 맞춰가면서도, 나 자신에겐 솔직하지 못할까”라는 독백은, 누군가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내 이야기 같았다.

 

이 영화의 감정선은 매우 섬세하다. 연인과의 대화에서도, 친구와의 술자리에서도, 앤은 자주 웃지만 어딘가 모르게 공허하다. ‘나는 이 관계 안에서 충분히 나로 존재하고 있었을까’라는 질문이 늘 따라붙는다. 그래서 이 영화는 이별을 다루면서도,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계 안에서 스스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자신에게 천천히 말을 건넨다.

 

앤이라는 인물이 특별한 건, 늘 부족한 채로 살아가는 걸 인정한다는 점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감정이 복잡해도 틀린 게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의 시간이 이 영화의 전부였다.

 

3. 이 작품이 묻는 질문: 우리는 언제 나로서 충분한가?

앤의 가장 큰 고민은 단지 이주나 연애의 실패가 아니다. 그것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과 주변의 시선 속에서, 나 자신의 감정은 얼마나 우선순위를 가질 수 있는가.

 

앤은 자주 “이건 내가 원하는 건데 왜 미안하다고 해야 하지?”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나 자신을 줄이고 맞춘다. 그리고 그게 어른스러움이라고 착각한다. 이 영화는 그런 착각을 조용히 해체한다. 관계는 타협이 아니라, 솔직함 위에서만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4. 기억에 남는 장면: 노트북 화면을 닫지 않은 채 집을 나서는 앤

앤이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기 시작하는 장면이 있다. 타자 소리만 들리는 어두운 방에서, 그녀는 오랜 시간 묵혀뒀던 생각을 조심스레 끄집어낸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노트북을 닫지 않은 채 자리를 떠난다. 그 장면이 오래 남았다.

 

그건 마치 그녀가 처음으로 자신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 순간처럼 느껴졌다. 끝내는 완성하지 못한 문장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적어도 ‘쓰기 시작했으니’ 괜찮다고, 그렇게 말해주는 장면처럼 보였다.

 

5. 정리하며: 누군가와 연결되기 전에, 나와 먼저 연결되기

앤아더는 요란한 사건 없이도 감정의 깊이를 끝까지 끌고 간다. 그리고 아주 작고 조용한 결심을 응원한다. 나는 괜찮은가, 나는 원하는 방향으로 살고 있는가, 나는 지금 나를 존중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을 천천히 건네주는 영화다.

 

떠나기 위해 준비하던 앤은 결국, 떠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로 조금 더 가까워진다. 멀리 가지 않아도, 진짜 중요한 여정은 언제나 안쪽에서 시작된다는 걸 보여준 영화였다.